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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6년 7월 24일 : 나의 주말



사월에 우연찮은 계기로 시작한 합창반이 벌써 사개월째. 토요일 아침은 허둥지둥 푹 젖은 머리를 하고 집을 나서 음악에 푹 젖었다가 점심때를 넘겨 집으로 돌아온다. 대충 오후 네시쯤. 다이어리 구석에는 늘 만들어보고 싶은 음식의 리스트가 적혀있고, 머릿 속에 꼭 만들어봐야지 하는 음식이, 만들기 전까지 머릿 속을 맴맴 돌고 있으므로 꼭 해보는 편. (아니면 계속 맴맴거려서 정신이 없다!)

지난주였나, 갓 낳은 둘째까지 보태 애 둘을 키우느라 정신없을 친구로부터 참 오랜만에 연락이 왔는데 '너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전향한거냐' 라는 물음에 '푸드를 스타일있게 먹고 싶을뿐!' 이라고 대답해줬다. 혼자살면서 매일 밥하고 도시락싸는 나를 보면 주변에서 '정말 대단하다'는 말을 많이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맛없는걸 매일 먹는 분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도 처음부터 이랬던건 아니다. 일주일에 밥 한번 안먹을 정도로, 이마트에서 하도 과자를 사대서 기사님이 내 이름 외울정도로  불건강한 생활 해봤다. 충분히!

사람을 간단하게 쪼개면 몸과 마음의 두 영역인데, 어느 한 면이 변하면 자연히 다른 면도 변하게 되는 것 같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울증 앓는 사람이 삼시세끼 꼬박꼬박 충분한 양의 야채와 손으로 만든 요리를 먹을까? 몸과 마음에 그럴 여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나는 마음에 대한 많은 것들을 걷어내면서 몸이 많이 부지런해졌다. 원래도 요리하는걸 좋아하긴 했지만, 매일 밥하고 설거지하고 또 밥하고. . . 이런 과정을 조금은 달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는 부지런해졌다.

집에 와서 빨래하고 청소하고 쓰레기 버리고 땀에 푹 젖어서 요리하고 샤워하면 천국이다! 좋아하는 음악 틀어놓고, 가스불 올려놓고 막 뭔가를 만들면 기분이 엄청 좋다.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좋은 냄새, 신선한 야채들, 손질할 때의 촉감. '부엌에서 좋은 냄새를 피워올릴 수 있으면 진짜 어른'이라는 생각을 예전부터 줄곧 해왔다.

오늘은 아침에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가고싶었는데 꼼짝을 안하고 침대에서 뭉개놓고는, 요리 만들고 싶어서 벌떡 일어났다. 원래 계획은 영화를 두 편보고 서점에 들러서 책 사고 머리도 좀 자르는 거였는데 그런거 없다. 요리 만들고 아이스크림 퍼먹고 책 두장 보고는 잠들었다가 다시 일어나서 요리 만들고 빵에 버터 발라먹고 또 자고, 오후 네 시 다되서야 씻고 또 누워서 요리책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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