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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6년 6월 22일






어제는 하지. 1년 중 낮이 제일 긴 날이다. 나는 낮을 홀랑 다 까먹고는 자정을 넘겨 새벽 세시 무렵에야 겨우겨우 잠이 들었다. 자정 넘겨 웅 - 웅 - 빨래를 돌리는 옆방 총각의 노매너를 따끔하게 꼬집어주고 싶었으나, 노매너로 치면 나도 한 몫하므로 - 복도에 내복차림으로 나가기, 자정께까지 기타치기, 새벽에 또 기타치기, 샤워하다가 배고프다고 소리 지르기 등-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끄응.



늦게 잔 탓인지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더니, 가방에 리모콘이 안 들어있으면 이상할 정도로 허둥대며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 와중에도 어제 새로산 라이스바가 너무 맛있어서 신호등 앞에서 서서 두 개나 까먹었다. 이럴때면 정말로 가공可恐할만한 순발력이 발휘된달까. 



통 점심생각도 없어서 편의점에서 (사랑해마지 않는!) 끌레도르 카라멜 솔티드 콘을 하나 집어 나왔다. 어떤 아줌마가 편의점 앞 보도블럭 위에 황망하게 앉아있었는데 갓 넘어진 모양이다. 가방이며 안경 따위가 뒹굴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그를 발견한 다른 아줌마가 잡으라며 한 손을 내밀었다. 나도 손을 내밀까말까를 쭈뼛, 고민하는 찰나에 한 아저씨가 아줌마를 꾹 안아일으켰다. 낯선 사람과 닿는 것에 너무나 예민하고 불쾌해하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 온몸이 얼어버린다 -나도 모르게 쭈뼛거렸다. 미안했다. 아줌마는 일어나서도 황망한 얼굴이었다. 주변에 몇 사람들이 '이렇게 넘어지면 일어나기 힘들다'면서 아줌마를 위로했다.



한 손엔 카라멜 콘을 쥐고, 나머지 빈 손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걸었다. 아줌마에게 손을 내밀었어야 되지 않았니? 지난 겨울에 몇 번 만났던 남자아이는 스스럼없이 내 손을 잡았다. 쌍팔년도 수법인 '손이 어쩜 그리 예뻐요?' 로 손을 조물락거리더니 자주 내 손을 잡으려 들어서 내가 무안을 준 적이 있다. 



/ 왜 자꾸 손 만지는데?

/ ... 어?

/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닌데 넌 왜 이렇게 손을 편하게 잡아?

/ 어, 개랑 고양이를 보면 귀여워서 자꾸 만지고 싶잖아. 그런거랑 똑같은거지.

/ 내가 니 개냐? 

...



아무튼 손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하고, 나는 카라멜 콘을 먹으며 흐린 구름 아래를 어슬렁 배회하다가 한 교회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 봄엔 자주 왔었는데 여름이 되면서 볕이 강해지니 통 나와 앉지를 못했다. 근처에 교회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도 처음엔 차마 들어갈 엄두는 못냈다. 벤치에 앉아서 좀 쉬고 싶었지만! 절에는 스스럼없이 가면서 교회 앞에선 왠지 우물쭈물하게 된달까. 어려서부터 교회와 성당의 성서가 다르고, 교회의 교리는 어쩌고 저쩌고 뭐가 어찌어찌 저찌저찌 다르고... 귀에 딱지가 않도록 많이 들은터라 나도 모르게 방패가 작동한 것일까. 성당을 안 다닌지도 5년을 훌쩍 넘겼는데 우습지. (사순, 부활 판공 다 빼먹고 성탄까지 나몰라라 한 나는 보나마나 '냉담자'로 등록되어 있을 것이다. 꽁꽁 얼어있다. 아 냉담해!) 



벤치에 앉아있으니 바람이 많이 불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앞이 소란해 살며시 눈을 떴더니 한 여자가 새끼 고양이에 목줄을 매고는 연신 내 앞을 왔다갔다한다. 왜 내 앞이냐. 쯧. 귀찮군. 그러나 고양이는 귀엽다. 마음이 툴툴 심통이 났는지 요새 좀 차분하기가 쉽지 않다. 카라멜콘 파워를 믿어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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