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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6년 2월 26일 : 고, 독 사

 

△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바베> 전시작 中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더니, 나는 송충이도 아닌데 어젯밤 기름짤짤 흐르는 윤기 백프로의 족발을 먹었다가 밤새 앓았다. 속이 다 뒤집어지고 몇 번이나 변기를 부여잡고 게워냈는지 모르겠다. 아. 열이 펄펄 끓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우웩, 다시 화장실로 달려가는 몇 번의 퀘스트를 무한 반복하다 새벽이 밝았다. 아침 8시쯤이었나. 친구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 야, 우리 볼링치러 가기러 한 거 일요일에 가면 안될까.

/ 왜?

/ 나 식중독 걸렸나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아니 그렇게 아프면 전화를 하지, 응급실이라도 갔어야 될꺼 아니야, 미련하게 왜 그래. 제약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언제나 약과 병원을 맹신한다. 나는 언제나 약과 병원을 불신한다. 대부분 친구의 선택이 옳았다. 언제나 옳았을 수도 있다. 나는 왜 그렇게 병원 가는 걸 싫어할까. 그러나 저러나 저녁에 볼링치러 못가게 되다니 아픈 와중에도 그것이 못내 아쉽다. 친구가 시어머니처럼 혀를 끌끌 차며 저녁에 일 끝나고 들리겠다는 말을 했다.

 

 

내 생일날 저녁에도 패밀리도 아니면서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무슨 립, 그러니까 입술 말고 넘의 등짝뼈를 핥았는데 집에 와서 속이 다 뒤집어 졌더랬다. 그 때는 고기를 못 받아들이는 내 속은 생각하지 않고 패밀리 레스토랑의 음식 질과 위생상태에 대해 힐난을 퍼부으며 아픈 속을 부여안고 잠이 들었는데, 서울 시내에서 손에 꼽는다는 족발을 먹고서도 이 난리이니 나 왠지 억울하다. 그러고보면 고기 같은 걸 먹으면 늘 장이 꼬인 듯이 배가 아팠었는데, 아 이러다가 평생 울며 채소만 먹어야 하는 걸수도 있는건가. 겨자는 채소인가. 혼자 사는 사람들은 늘 고독사에 대한 어떤 두려움을 안고 지낸다는데, 나도 문득 그런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면서 갑자기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부인을 생각했다. 아줌마는 왜 갑자기 설렁탕이 먹고 싶었던걸까. 사노 요코 할머니도 생각났다. 할머니는 이혼을 두 번이나 하고 혼자 아픈 몸을 끌고 호스피스 병원에도 입원했다가 뭐 어쩌다가 했다던데. 그래도 할머니 곁에는 사람들이 많았지. 소설가 김영하가 어느 책에서 말한 고독사에 대한 이야기도 떠올랐다. 아프면서 별 생각을 다 한다. 속이 뒤집어 질 것 같아서 어제인가 그제 이원일 셰프가 썰어준 바게뜨 남은 조각을 몽땅 털어넣었다. 아, 좀 살 것 같아. 역시 젊음이란 좋은 거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밤새 속을 다 게워내면서도 빵 몇 조각에 거뜬해지니. 고기를 많이 먹는 건 아니지만 왠지 이제 고기를 점점 더 못 먹게 될 거라는 사실에 미리 슬퍼진다. 1년에 간간이 몇 번, 제사 때만 만나는 산적꼬치랑 고기만두랑 스테이크랑 탕수육이랑... 그러고보니 고기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꼽을만한 고기 요리가 별로 없구나. 고기에 대한 비非애호를 야채로 돌렸다면 진즉에 좋았겠지만 그 지분을 죄다 빵, 과자, 케이크가 갖고 있으니. (핡핡! 먹고싶어!)

 

 

늘 '10년뒤엔 채식 주의자가 되겠습니다' 라고 하였으나...그 10년이 왠지 당겨지는 느낌이다. 어쨌든 나 이제 립도 못 먹고 족발도 못 먹게 되었다. 보쌈도 못 먹겠지. 갈비도 못 먹을꺼고 삼겹살도 못 먹을꺼고 스테이크도 못 먹을꺼고 탕수육도 못 먹을꺼고 육회도 못 먹을꺼고 평양냉면 위에 올려진 고기 고명은 어찌한단 말인가. 아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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