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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짧은 만남과 급작스런 이별 후 한 달이 지난 뒤의 소회

 

△ 너와의 인연도 머지 않았다.

 

 

 

제목이 길었다. 제목만큼이나 긴 글은 아니지만, 오늘 아침 문득 출근을 하면서 '너를 만난 것과 헤어진 것 모두 잘 된일이다.' 하는 일종의 명상서에 나올 법한 생각이 퍼뜩 들었다. 물론 이 생각을 오래오래 유지한다면 나는 훌륭한 사람이겠지만, 좋고 훌륭하고 멋지고 어진 생각은 금새 사라진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헤어졌을 때, 나는 화병으로 몸져 누울 것 같았다. '우리는 (이렇게는) 헤어지면 안된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남들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이런 말도 안되는 사소한 이유로 헤어져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나를 붙들었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분노가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은 족히 올라왔고 길거리에서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얼굴을 갈겨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화가 풀어진다면 진짜 몇 대라도 패주고 싶었다.

 

내 안에서 휘몰아치던 분노의 광기가 조금 사그라들고 나니 '차라리 잘 됐다' 라는 자기 위안이 올라온다. 그래 차라리 잘 됐어. 결혼할 사람도 아니었잖아. 주변에서 (제3자 보기에는) 진득하게,  여전히 예쁘게 사랑하는 이들을 보니 이 생각에 힘이 실렸다. 나를 위한 측은지심이 풀 가동된다. 차라리 만나지 말 걸. 처음에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딱 잘라냈어야 하는건데. 그 날, 어이없이 싸웠을 때 차라리 그 때 정리하는게 더 좋았을텐데. 그럼 지금 이렇게 힘들지 않을텐데. 이게 뭐야. 남들은 다들 잘만 만나는데, 난 만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이렇게 어이가 없다니. 괜히 만났어. 투덜투덜. '헤어지면 안된다'가 '만났으면 안된다'가 되는 순간이다.

 

그러다가 오늘 문득 (잠시였지만), 그래 넌 내 인생에 만났어야 하는 사람이고 또 오래 머물러서는 안될 사람이지. 그래. 라는 생각이 올라온다. 그렇다. 분명 그 사람만이 나에게 선사할 수 있는 특별한 감정들이 있었다. 그건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나는 평생 맛보지 못한채 지나갔을만한 감정의 편린들.

 

그렇지만 그와의 연애는 나에게 행복감보다 불만, 소외감, 외롭고 쓸쓸함을 더 많이 안겼고, 이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저 이런 서늘한 감정들은 '나와는 맞지 않다'는 신호였다. 그 신호를 무시하고 자꾸 억지로 따듯하게 데워보려 했던 것. 그애를 탓할 것도 없고 (물론 아직도 생각하기에 그 애는 너무 이기적이다.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다. 정말 주먹이 나갈 수도 있으니까. 설마 보고 있진 않겠지?) 나를 탓할 것도 없다. 연애의 전문가는 서늘한 감정들을 눈물겨운, 때로는 억지노력으로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서늘한 감정의 신호탄을 재빨리 캐치하고 뒤돌아서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에게 최대한의 좋은 기억과 최소한의 상처만 남기도록. 그렇지만 나는 또 다음 연애에서 서늘한 감정을 데워보겠다며 끙끙대고 있겠지.

 

아주 따뜻한 사람을 만나 아주 따뜻한 연애를 하거나, 나의 미적지근한 온도와 너의 미적지근한 온도가 만나 적어도 목욕물 정도의 온기는 유지했으면 좋겠다. 서늘한 연애는 이제 싫다. 

 

 

* 그래도 참 많이 좋아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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